의학칼럼

 
[한방] 와사풍(안면신경마비)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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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사풍(안면신경마비)

 

 

허영란 | 동강한방병원 한방내과 전문의

진료분야 : 소아질환, 비만클리닉, 성장클리닉, 비염

 

 

구안와사, 와사풍 혹 안면신경마비는 입이 돌아가는 병이다. 중풍은 아니고 얼굴신경만 마비가 와서 한쪽 눈이 감기지 않고 말하거나 웃거나 찡그려보면 입이 비뚤어진 것이 드러난다.

이전에는 아주 차가운 다듬이 돌을 무심코 베개 삼아 베고 잤다가 얼굴이 마비되는 수가 있었다. 촌에서는 농사짓는 사람이 낮에 점심 먹고 축축한 나무 그늘 밑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자다가 그만 입이 돌아가기도 하였다.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자고 났더니 입이 돌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다르다. 심약한 편인 여고생이 어느 날 급우의 사망 소식을 듣고 다음날 일어나 보니 입이 돌아가 있다. 겁 많은 주부가 설악산 관광 갔다가 일행의 강권에 못 이겨 흔들바위에 올라갔더니 아찔했고 그 다음날 입이 돌아갔다. 이제 막 귀국하여 심신이 피로한 기관장이 선박회사의 정당하지 않은 대우에 전화로 삼십분 가량 열을 내었다. 다음날 역시 얼굴이 마비되었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찬 것, 습한 것을 얼굴에 직접 맞닥뜨려 안면신경이 마비되는 일이 많았고, 요즘은 놀라거나 겁먹어 마음이 움찔했든지, 제 뜻대로 하지 못해 울증이 생겼든지, 심사가 뒤틀려 화를 내었든지, 고민을 했든지 해서 되는 경우가 많다. 찬 것, 습한 것도 얼굴을 마비시키지만 감정의 동요로, 얼굴부위로 생명활동력(기혈순환)이 올라가지 못하든지 반대로 얼굴로 떠서 막히든지 해서 자체적으로 신경이 둔해지고 마비되기도 하는 것이다.

 

면회제양주심화(面會諸陽主心華), 한열풍종속위가(寒熱風腫屬胃家)

이는 얼굴은 마음(기분이나 감정)이 주장하고 비위기능(소화력)의 활동력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상대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를 알 수가 있다. 화창한 봄날같이 마음이 활달한지, 기쁜지, 우울한지, 비관하는지, 성내는지를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생기가 얼굴에 잘 나타나고, 또 소화기계통의 경락(혈자리)이 얼굴에 많이 분포되어 있으므로 위장이나 대장기능의 결과도 얼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얘기했듯, 이전에는 바깥의 차거나 습한 기운에 영향을 받아 와사풍이 오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이러한 풍한습(風寒濕)을 한약이나 침으로 풀어주면서 기운을 조금 북돋워주면 되므로 치료가 쉽고 빠른 편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차거나 습한 기운을 접촉하지 않았는데도 와사풍이 오니, 이는 마음(기분이나 감정)의 상태가 오랫동안 불안초조, 우울하거나 비관해서 또는 염려걱정으로 활달하지 못 했다거나 갑자기 심하게 화를 내다보니 얼굴로 깨끗한 기운과 영양이 가지 못해 찌꺼기가 생겨 얼굴 신경의 소통을 방해해 마비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치료방법이 그 원인에 따라 달라진다. 병의 부위가 얼굴이고 비교적 얕은 신경이므로 얼굴로 올라가는 약, 락맥(비교적 가느다란 신경과 혈관)에 작용하는 약이 필요하다. 식어지면서 활동이 안 되어 습기가 생겨 있으므로 데우고 습기를 녹이는 약도 써야겠다. 초조하고 애를 많이 쓴 사람이라면 진액이 말라져 있으니 신경을 도우는 약이 선택된다. 맥이 까라진 사람은 원기 안 도울 수 없고 신경이 막힌 걸 뚫는 약도 필요하다. 위장 기능이 원활하지 않으면 흔히 얼굴이 상기되거나 붓기도 하는 것처럼 와사풍에도 위장을 도와주는 것이 안면에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런 여러 가지를 사람에 따라 잘 정리하여 처방을 내어 쓰면 치료가 어렵지 않은 편이고 이는 의사의 몫이다.

 

치료를 위해 환자의 몫이 있고 이는 의사보다 중요하다.

얼굴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니, 그 그릇에 깨끗하고 좋은 것을 담아야 하지 않겠는가!

초조불안, 염려걱정, 우울하거나 성냄을 담는다면 우리 몸의 기혈이 혼탁해져서 얼굴에 있는 녹(찌꺼기)을 닦기가 어려워지고 그만큼 치료는 더디어 지고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니 자주 웃자. 특별히 웃을 일이 없더라도 계속 웃다보면 마음이 즐거워지니 얼굴에 화색이 돌고 이러다 보면 기혈소통이 잘 되서 얼굴에 낀 녹이 스르르 녹고 차츰 돌아온다. 얼굴 돌아간 것을 걱정하는 것은 녹을 더 끼게 만들어 치료를 힘들게 하는 것이니 치료기간동안 거울을 멀리하고 가능한 그 사실을 잊고 바보같이 자주 웃자. 코미디나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는 것도 괜찮다.

얼굴에 위장 기능도 영향을 주니 규칙적인 식사와 올바른 먹거리를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선풍기, 에어콘 바람이나 습한 기운이 얼굴에 직접 닿은 것은 해로우니 이도 조심해야 할 바이다.

이렇듯 환자와 의사가 같이 노력하면 구안와사, 와사풍은 대부분의 경우는 쉽게 치료된다.